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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나요 작성일20-11-04 17:14 조회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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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당국, 남성 압송해 신원 확인·월남 경위 조사 중으로 알려져
북한 주민의 월남에 수색작전을 펼쳤던 군 병력이 4일 철수하고 있다. 강원 고성=연합뉴스

북한 주민의 월남에 수색작전을 펼쳤던 군 병력이 4일 철수하고 있다. 강원 고성=연합뉴스

북한군 병사의 ‘노크 귀순’으로 물의를 빚었던 육군 22사단 담당 지역인 강원도 고성군 최전방 동부전선에서 민간인 귀순자로 추정되는 북한 주민 1명이 철책을 넘어 월남하는 일이 빚어져, 군 경계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뉴스1이 4일 보도했다.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 국적의 남성은 지난 3일 오후 7시26분쯤 비무장지대(DMZ) 내 우리 군 감시 장비에 처음 포착됐으며, 남하하는 과정에서 일부 철조망이 훼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침투 경계태세인 ‘진돗개 둘’을 발령하고 수색작전을 펼친 군은 4일 오전 9시50분쯤 남성의 신병을 확보했다. 이는 처음 신원미상자로 남성을 포착한 이후 14시간여 만에 이뤄진 것이다. 군과 국가정보원 등 관계기관은 남성을 압송해 신원 확인, 월남 경위 등을 조사 중으로 알려졌다.

남성의 신병을 확보한 장소는 GOP(일반전방초소)에서 상당히 남쪽으로 알려졌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이번 일과 관련해 남성의 단순 귀순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지만, 철책이 뚫리고 시간이 흐른 후에야 신병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군이 경계 작전 실패를 반복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최전방 철책에는 과학화경계감시 장비가 설치됐는데, 사람이나 동물이 철책에 닿으면 센서가 울리며 5분대기조가 출동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남성이 월남할 때 이 장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도 관심사다.

특히 이 지역을 담당하는 부대는 육군 22사단으로, 2012년 10월 북한군 병사가 DMZ를 넘어 해당 부대의 GOP 생활관 창문을 두드려 귀순 의사를 밝힌 이른바 ‘노크 귀순’을 겪기도 했다.

합동참모본부는 해당 경계부대에 전비태세검열단을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사건은 지난해 7월31일 북한군 한 명이 중부전선 임진강을 거쳐 귀순한 뒤 1년3개월 만에 벌어졌다. 앞선 2018년 12월에도 북한군이 동부전선을 넘어 귀순한 바 있으며, 2017년 11월에는 북한군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이청용이 최근 울산현대 클럽하우스에서 가진 본보와 인터뷰에서 국내 복귀에 대한 소회를 전한 뒤 미소짓고 있다. 울산=왕나경 인턴기자.
이청용이 최근 울산현대 클럽하우스에서 가진 본보와 인터뷰에서 국내 복귀에 대한 소회를 전한 뒤 미소짓고 있다. 울산=왕나경 인턴기자.
3월 초 프로축구 K리그가 개막 전부터 들썩였다. ‘블루드래곤’ 이청용(32)의 울산 입단 발표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FC서울에서 뛰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무대로 진출한 지 11년 만에 국내 무대로 돌아오는 그를 울산 팬뿐 아니라 다른 팀 팬들도 반겼다. 비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개막이 미뤄지고, 개막 후에도 한동안 무관중 경기가 치러졌지만 이청용의 녹슬지 않은 기량에 축구 팬들은 열광했다.

이청용은 1일 막을 내린 K리그1(1부 리그)에서 목표로 했던 우승 트로피를 들진 못했지만, 국내 복귀 첫 시즌 팬들의 성원에 진한 감격을 느낀 모습이었다. 그는 최근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해외파 선수들을 향해 “은퇴 전 K리그에 복귀해 뛰어보니 연봉 이상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며 “많은 선수들이 K리그에 돌아오는 걸 너무 꺼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힘 줘 말했다.

이청용이 지난 3월 5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울산 현대 입단 기자회견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청용이 지난 3월 5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울산 현대 입단 기자회견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코로나19 여파로 27경기로 축소 운영된 이번 시즌 K리그1에서 이청용은 20경기에 출전, 4골 1도움을 기록했다. 중원과 측면을 부지런히 오가며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보이며 울산의 공격을 지휘했다. 적극적인 수비 가담도 서슴지 않는 모습에 후배들도 덩달아 힘을 냈다. 이청용은 “한 시즌을 치러보니 어느 하나 쉬운 팀이 없었다”며 “2009년과 지금을 비교하면 K리그 전체적인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고 팀마다 색깔도 뚜렷해진 것 같다”고 돌아봤다.

30대 초반이란 다소 이른 나이에 국내 복귀를 선택한 건 오롯이 그의 선택이었다. 한 번쯤은 유럽 내 다른 팀에서 더 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청용 마음은 K리그로 향해 있었다. 그는 “언젠간 한국 팬들 앞에서 뛰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며 “유럽에서 한 번 더 이적했다면 2~3년 뒤에나 돌아올 수 있는데, 그 때는 너무 늦을 거라는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 때 한국 팬들과 만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청용이 지난 8월 30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경기에서 득점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청용이 지난 8월 30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경기에서 득점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가족들은 되레 이청용의 경기력이 떨어져 비판을 받을까 봐 국내 복귀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전성기가 지났기에 걱정을 많이 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막상 국내에 오니 팬들이 내가 뛰는 것 자체를 좋아해주시는 것 같았다”며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내가 엄청난 톱 스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런 팬들의 모습을 보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국내 복귀를 염두에 두고 있는 해외파들에게도 이런 분위기가 잘 전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청용에 이어 7월엔 FC서울 시절 그와 단짝이던 기성용(31)도 친정으로 복귀했다. 곡절은 많았지만, 기성용이 K리그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그는 울산 구단을 통해 환영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소개하기도 했다. K리그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지만, 이 자체도 하나의 이야깃거리였다. 8월 30일 경기가 끝난 뒤 서울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이청용과 기성용, 그리고 박주영(32ㆍ서울) 고요한(32ㆍ서울) 고명진(32ㆍ울산)이 한 데 모여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도 화제였다. 이청용은 이 때를 떠올리며 “성용이가 상대팀이었지만, 상대팀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며 “한국에선 처음 다른 옷을 입고 뛰다 보니 느낌이 묘했다”며 웃었다.

지난 8월 30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울산과 서울의 경기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고요한(왼쪽부터), 고명진,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지난 8월 30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울산과 서울의 경기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고요한(왼쪽부터), 고명진,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울산에서는 올해 처음 생활해본 이청용은 연고지에 대한 만족감과 애정을 전했다. 그는 “코로나19로 많이 움직이진 못했지만, 산과 바다가 모두 가까워 가족들과 한적한 곳에 가서 시간 보내기에 좋았다”고 했다. 맛집도 발굴해가며 울산의 매력을 한껏 느끼고 있단다. 그는 “팬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다면 좋겠지만, 한편으론 이런 상황에서도 시즌을 모두 치러냈다는 게 놀랍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건 한 두 사람의 노력이 아닌,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자부심을 전하기도 했다.

끝으로 그는 해외 진출에 도전하는 K리거들에게도 응원을 전했다. 그는 “가끔 동료들이 내게 TV에 나오는 선수들에 대해 물었을 때 그 선수에 대해 얘기해주곤 한다”며 “울산은 물론 K리그 무대에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은데, 어딜 가든 실력과 함께 현지 선수들과의 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다른 선수들과 운동장 밖에서의 관계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쌓는다면, 어딜 가도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영어는 어느 나라에서든 쓸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해두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청용이 최근 울산현대클럽하우스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울산=왕나경 인턴기자

이청용이 최근 울산현대클럽하우스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울산=왕나경 인턴기자
울산=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2017년 2월 WBC대회를 앞두고 일본에서 훈련할 때의 이대호, 김태균 모습>


-원래 메이저리그 진출 꿈꿨지만 뇌진탕 후유증으로 방향 선회
-부상 이후 뚝 끊긴 해외 진출, 지바 롯데만 기다려줘
-일본에서 만난 임창용의 공은 거의 신급이었다
-친구 이대호는 내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타자
-86경기 연속 출루는 가장 자랑하고 싶은 기록
-가장 마음에 든 별명은 ‘한화의 자존심’

김태균, “30년 동안 야구만…, 이젠 다양한 경험해보고 싶어”-<2>편에 이어 김태균과의 인터뷰 마지막 회를 소개한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터라 해외 진출을 한다면 일본이 아닌 미국이라고 예상했는데 일본을 택했다.
(WBC대회에서 4번 타자로 출전한 김태균은 일본이 자랑하는 ‘괴물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당시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를 상대로 대형 홈런을 뽑아내는 등 타율 0.345 3홈런 11타점을 기록하며 대회 ‘BEST 9’에 선정,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의 주목을 받았다.)

“원래 해외 진출의 우선 순위가 미국이었다. 그런데 그 해 4월에 (두산전에서) 뇌진탕을 당했다. 전력 질주해서 홈으로 파고 들다 포수와 충돌하면서 머리를 땅바닥에 심하게 부딪혔고, 뇌출혈 증상이 있었다. 2군으로 내려가 병원 다니며 치료를 받은 후에도 타석에 들어서면 마치 만화 영화처럼 투수의 공이 여러 개가 한꺼번에 날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병원, 한의원 등에서 서로 치료해주겠다고 많은 연락이 왔다. 매일 4군데 정도의 병원, 한의원에 들러 치료를 받고 야구장으로 출근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되니까 공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더라. 문제는 뇌진탕을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 일본 등에서 상상도 못할 정도의 과분한 관심을 받았다. 여러 팀들이 접촉을 해왔는데 뇌진탕 증세 이후 모든 연락이 끊기더라.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서 이후 치료에만 전념했다. 뇌진탕 걸렸을 때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팀이 지바 롯데였다. 정말 고마웠다. 내가 회복 후 좋은 성적을 올릴 때 다시 미국, 일본 프로팀에서 연락이 왔지만 그동안 변함없이 관심을 보인 지바 롯데를 배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생활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2011년 시즌 중 팀 내 변화된 분위기와 지진 등의 영향으로 퇴단을 결정했는데 그 결정을 후회한 적은 없었나.

“없었다. 그 일로 인해 욕은 많이 먹었지만 사람들이 내가 겪은 상황을 다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그 사람이 왜 힘들어 했는지, 왜 돌아왔는지는 본인 아니고는 모르는 일이다. 나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타자라면 가장 기억에 남는 투수가 있을 것이다. 찾아보니 김태균 선수가 상대했던 투수들 중 SK 시절의 김광현 선수한테 강했던 반면에 두산 유희관 선수한테는 어려움을 보였다.

“이 선수 공은 정말 치기 좋았다고 생각했던 투수는 한 명도 없었다. 다들 힘들었다. 그만큼 상대 투수도 집중해서 던졌다. 이 선수 공은 못 치겠다고 생각했던 선수는 딱 한 명, 임창용 선배님이다. 일본에서 임창용 선배님이 속한 야쿠르트와 시합을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임창용 선배님은 일본에서 거의 신(神)급이었다. 전력분석팀에서 다른 투수들 전력 분석하다가도 임창용 선배님 영상이 나오면 “이 투수는 너희가 상대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니까 최대한 공을 많이 던질 수 있도록 커트해내고 투구 수가 늘어나도록 해. 그래야 내일 못 나올 테니까”라고 분석하더라. 경기 중에도 임창용 선배님이 마운드에 오르면 상대팀 선수인데도 우리 더그아웃에선 계속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상대팀 투수의 공이 좋아도 그런 감탄사가 나오긴 어려운데 임창용 선배님이 던질 때는 달랐다. 그만큼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셨다.”파워볼

<2010년 일본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만난 임창용과 김태균>


타석에서 본 투수 임창용의 공은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하다.

“팔색조라고 해야 되나? 손이 어디서 나올지 예측이 안 됐고, 공이 똑바로 오는 게 없었다.”

타자는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 구종이 보일 때도 있다고 하던데.

“공이 보인다는 선수가 누구인가?(웃음) 나도 한창 때는 공이 보였다. 구질이 보이는 게 아니라 느낌이었다. 투수들은 투구시 특유의 동작들이 있다. 속구를 던질 때, 변화구 던질 때의 투구 모습의 미세한 차이 말이다. 이전에는 그런 걸 다 보고 쳤다. 그런데 요즘에는 안 보이더라. 그래서 나의 말년이 안 좋았던 것 같다. 나는 노려 치는 스타일이 아니다. 공보고 공치는 유형인데 선수 생활 막판에 뭐라도 해보려고 노려 치는 걸 시도했었다. 직구 노렸다가 변화구 들어와서 헛스윙 하는 등 결과가 좋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있나.

“아쉽지는 않다. 일본을 먼저 가게 됐고, 일본에서 활약하다 미국으로 방향을 틀 계획이었다. 그리고 은퇴는 한국에서 해야지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안타깝긴 해도 후회는 안 한다. 그냥 받아들인다. 내 운명인 것 같다. ‘너는 거기까지야’ 하는 그런 운명 말이다.”

야구계에서는 82년생을 ‘황금세대’라고 부른다. 그중 82년생 동기인 이대호 선수하고는 줄곧 라이벌로 비춰졌다. 선수한테 이런 분위기가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하다.

“대호도 그럴 테지만 크게 의식 안했다. 신경 쓰고 그러진 않았던 것 같다. 잘했으면 잘했나 보다. 시즌 끝나고 나서 성적을 보며 올해는 대호가 잘했네, 올해는 내가 대호보다 잘했네 등등의 생각은 했을 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살아야 해서 남을 의식할 만한 정신이 없었다. 남들은 내가 게을러 보인다고 하더라. 전혀 그렇지 않다. 나한테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면서 야구장 퇴근 후 집에 가서 새벽까지 개인 훈련한 적이 많았다. 다시 대호 이야기로 돌아간다면 대호는 대한민국 최고의 타자 아닌가. 나보다 한 수 위 타자라는 건 내가 인정한다. 나보다 나은 타자다. 내가 못 갖고 있는 걸 대호가 갖고 있는 부분도 있다.”

김태균 선수가 갖지 못했는데 이대호 선수가 갖고 있는 게 어떤 건가.

“공에 대한 대처 능력이나 유연성 등이 아닐까 싶다. 사실 어렸을 때는 내가 대호보다 못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대호가 나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했던 건 일본 갔다 오면서부터다. 나는 어찌됐든 실패해서 돌아왔는데 대호는 일본에서 잘했고, 미국까지 갔다 왔다.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을 대호가 걸었다. 일본, 미국을 경험한 그를 보며 그냥 인정했다. 이대호는 김태균보다 한 수 위라고. 이대호는 정말 좋은 타자다. 훌륭한 타자이기도 하고.”

만약 자서전을 쓰게 된다면 그 많은 기록들 중 책 내용에 꼭 소개하고 싶은 기록이 무엇인가.

“86경기 연속 출루 기록이다. 그건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것 같다. 사람들은 출루를 가볍게 생각한다. 볼넷으로 나가도 되고, 홈런 쳐서 나가도 되는 게 출루니까 한 경기에 출루를 한 번 이상은 할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지만 연속적으로 출루를 이어가는 게 결코 쉽지 않다. 나도 어느 순간까지는 기록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러다 기록이 의식되면서부터 진짜 힘들었다. 볼넷으로 나가고 싶다고 해서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안타를 치고 싶다고 해서 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그런 어려움 속에서 이룬 기록이라 스스로 뿌듯해 하는 게 있다. 개인적으로 홈런도 중요하지만 출루의 중요성도 있다고 본다. 출루해서 주자가 있을 때 홈런치는 것과 주자 없을 때의 솔로 홈런은 그 가치에 차이가 있지 않나.”

김태균은 연속 출루 기록을 의식하면서부터 소극적인 플레이를 하지 않기 위해 초구부터 휘둘렀다고 한다. 원래 초구에 방망이가 안 나가는 스타일인데 그때는 일부러 초구에 스윙했고, 의도적으로 치고 나가려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2017년 6월 2일 SK전에서 85경기 연속 출루 신기록을 달성했던 김태균>


어느 경기서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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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등번호인 52경기서부터 그랬던 것 같다. 사실 그전에는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출루를 신경 쓰느라 내 타격이 안 되는 것 같고 자꾸 신경 쓰이는 게 정말 힘들었다. 마침표를 찍을 줄 알았던 출루 기록이 어찌어찌하다가 86경기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이어간 기록이 끝났을 때 어떤 생각이 들던가.

“후련했다. 하지만 마지막 타석에서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히게’ 쳤는데 그걸 천안 북일고 후배인 김동엽이 ‘기가 막히게’ 잡았다. 마치 발레하듯이 점프하면서 잡아냈다. 그 전날 나한테 방망이까지 달라고 했던 선수가 말이다.”

김동엽 선수한테 방망이를 줬었나?

“나는 후배들이 뭔가를 요구하면 거의 다 들어주는 편이라 동엽이에게 방망이를 건네줬다. 동엽이가 기가 막히게 잡아준 덕분에 기록에 마침표를 찍었지만 마무리는 멋지게 한 것 같다.”

2017년 6월 4일 SK전 8회말 네 번째 타석에 들어선 김태균은 SK 구원투수 김주한의 2구째 공을 잡아당겨 좌익수 쪽으로 안타성 타구를 날렸지만 SK 김동엽이 담장 앞에서 공을 잡아내는 바람에 출루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로써 김태균은 2016년 8월 7일부터 301일 동안 86경기에서 이어진 연속 출루 기록을 마감했다.

김태균 선수한테 홈런이란?

“보너스. 경기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의 타격을 하다 보면 얻어지는 보너스! 때로는 홈런을 의식한 적도 있지만 그럴수록 더 안 되더라. 그런 점에서 홈런은 나한테 보너스 같은 존재였다.”

김태균한테 출루율이란?

“내가 쉽게 죽지 않는다는 자신감이었던 것 같다.”

김태균한테 4번 타자란?

“무거운 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수십 년을 해도 4번 타자한테는 항상 책임이 뒤따랐다. 잘해서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도 있지만 못 했을 때, 팀이 패했을 때 모든 비난을 받아야 하는 부분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내가 젊고 힘 있을 때는 4번 타자 자리가 내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다. 4번이 아닌 다른 타순에 서면 굉장히 기분 나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부담이 되더라. 하지만 그 4번 타자의 자리 덕분에 내가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으며 은퇴할 수 있게 됐다고 본다.”

김태균의 설명처럼 성적이 안 좋을 때는 다른 타순에 선 적도 있었다. 은퇴하기 전에는 타순이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바뀌어서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오랫동안 4번에서 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루틴이나 버릇들이 있다. 3번 타자가 대기타석에 올라가면 내가 나갈 준비를 하다가 순간 ‘아, 내가 아니지’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한화 이글스 4번 타자 자리가 감사하면서도 때로는 부담으로 다가왔다는 김태균. 이제 4번 타자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야구장과 야구장 밖에서 다양한 경험들, 배움들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멋지게 펼쳐가길 바란다>


마지막 질문이다. 김태균한테 별명이란?

“별명은 팬들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이 없었다면 그런 별명들도 안 만들어졌을 테니까. 한때는 나조차도 인터넷으로 내 별명들을 보며 재미있어 했다. 개인적으로 ‘김질주’보다 ‘한화의 자존심’이란 별명을 더 좋아한다(웃음).”

한편 김태균이 마음 속 1호 감독으로 꼽은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은 애제자 김태균의 은퇴가 못내 섭섭하다고 말한다. 김 전 감독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태균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김태균은 내가 처음 봤을 때부터 야구 스타일이 묵직했다. 나이가 어려도 야구를 대하는 태도가 성숙했다.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고 하지만 지금 기량을 봤을 때 몇 년 더 선수로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빨리 은퇴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한화의 미래를 위해 후배들이 자신의 자리를 이어가길 바라겠지만 지금 한화에서 김태균 만큼 할 수 있는 선수가 누구일까 싶다. 그럼에도 이미 은퇴하기로 했고, 마지막까지 김태균답게 마무리하고 떠나는 것 같다. 지도자 입장에서 김태균은 고마운 선수다. 은퇴 후 공부도 하고 경험 많이 쌓아서 다시 한화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김 전 감독은 김태균이 한화에서 지도자로 좋은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기자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그런데 단장보좌역이 뭐 하는 거야? 태균이 앞에 한화 출신의 리더가 나왔어야 하는데, 그게 어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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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시절 알렉스 로드리게스. 사진=AP연합뉴스
[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A-ROD'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2000년 자신의 첫 FA 때 텍사스 레인저스와 10년 2억5200만 달러(한화 약 2843억원)의 천문학적인 계약을 맺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역대 메이저리그(MLB) FA 최고액 8위에 올라있을 만큼 초고액이다. 계약 총액 1억 5000만 달러를 넘긴 선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SB네이션의 시애틀 파트 '룩아웃 랜딩'은 4일 '매리너스의 2021 FA 목표, 젊은 천재(wunderkind) 김하성'이란 기사를 통해 김하성의 영입 필요성과 가능성을 전했다.

로드리게스는 1996년 메이저리그에 데뷔, 풀타임 첫해 타율 3할5푼8리 36홈런 123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045를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AL) 시즌 MVP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듬해 잠시 조정기를 거친 뒤 1998~2000년 3년 연속 40홈런 110타점을 넘기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고, 이는 역대급 계약으로 보답받았다. 눈부신 기록 못지 않게 그의 가치를 폭등시킨 것은 어린 나이였다. 2000년 당시 로드리게스는 25세에 불과했다.

매체는 "로드리게스의 계약은 물론 놀라운 재능 덕분이지만, 30세 이전에 소속팀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매니 마차도(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0년 3억 달러)와 브라이스 하퍼(필라델피아, 13년 3억3000만 달러) 역시 26세였다"고 설명했다. 하퍼는 역대 FA 계약 2위, 마차도는 5위에 이름을 올린 초고액 계약이다. 역대 1위는 LA 에인절스와 12년 4억2650만 달러의 계약을 맺은 마이크 트라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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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 매니 마차도. 사진=AP연합뉴스
김하성은 오는 10월에 만 25세가 된다. 올겨울 해외 FA 중 최대어로 꼽힌다. 기대치가 높은 반면 드래프트픽을 내줄 필요도 없다는 점도 장점이다. 매체는 "과소평가할 수 없는 파워와 팔 힘, 뛰어난 공격력과 더불어 3루까지 가능한 강한 어깨를 지녔다. 이번 겨울 유격수가 필요한 MLB 모든 팀은 김하성을 주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SPN과 팬그래프스닷컴, MLB트레이드루머스 등 현지 매체들은 김하성의 가치를 5년 4000만 달러(약 452억원)에서 최대 6000만 달러(약 678억원)까지 평가하고 있다. 키움에 지불할 포스팅 금액은 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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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가 23일 광주 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렸다. 2회초 1사 3루 김하성이 투런포를 치고 들어오며 3루코치의 축하를 받고 있다. 광주=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0.09.23/
로드리게스가 텍사스로 떠난 뒤, 시애틀의 포스트시즌 진출은 2001년이 마지막이다. 당시 시애틀은 신인왕-시즌 MVP 동시 수상에 빛나는 스즈키 이치로와 프랜차이즈 스타 에드가 마르티네스, '대마신' 사사키 가즈히로 등을 앞세워 무려 116승을 거뒀지만,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에 패했다. 이후 1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있다.

매체는 김하성이 앞서 MLB에서 실패를 겪었던 박병호(키움) 김현수(LG 트윈스) 황재균 (KT 위즈) 등과는 다른 선수임을 강조했다. 특히 KBO리그 출신 타자이자 거포 유격수로서 눈에 띄는 성공을 거뒀던 강정호와의 비교에서도 "강정호는 MLB 첫 시즌에 28세였다. 김하성은 그보다도 어리다. 유격수와 2~3루가 모두 가능한 멀티 포지션 능력도 지녔다"면서 "김하성을 영입한 시애틀은 2021년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이데일리 김소정 기자] 이데일리가 오늘 하루의 주요 이슈를 모아 [퇴근길 한 줄 뉴스]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퇴근길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세상소식을 매일 오후 5시에 배달합니다. [편집자 주]

◇ 트럼프 “바이든, 나 따라잡지 못할 것”…승리 확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 있는 백악관에서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조기 결과에 대해 말하고 있다.(사진= 로이터)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가 진행 중인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우리는 오늘 자축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라고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동부시간 기준 새벽 2시20분께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 등 예상치 못한 곳에서 승리를 거뒀다. 오하이오와 텍사스에서 승리했고 조지아와 노스캐롤라이나에서도 승리가 명확한 상황”이라며 “중요한 것은 우리가 펜실베이니아에서 굉장히 큰 격차로 이기고 있으며 65% 개표된 상황에서 상대방이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텍사스 주지사가 승리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의 개표 보도를 비판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이긴 게 맞다. 그런데 이 결과가 발표되지 않은 건 망신거리다. 우리는 미국의 연방대법원으로 이 문제를 가져갈 거다”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우편투표에 대해서도 “시간이 지난 뒤 반영되지 않은 투표를 뒤늦게 반영하는 상황을 우리는 막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북한 주민, MDL철책 넘어 월남…귀순 추정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관련이 없음.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3일 민간인 귀순자로 추정되는 북한 주민 1명이 강원도 고성 최전방 동부전선을 넘어 월남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북한 국적자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쪽으로 온 것은 약 1년 3개월 만인데요. 합동참모본부는 4일 “우리 군은 강원도 동부지역 전방에서 감시장비에 포착된 미상인원 1명을 추적하여 오늘 오전 9시 50분께 안전하게 신병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까지 북한군의 특이 동향은 없다고 전했습니다. 당 지역에서는 전날 오후 7∼8시께 신원을 알 수 없는 1명이 철책에 접근한 상황이 포착됐는데요. 해당 부대는 ‘진돗개 하나’로 격상하고 수색작전을 벌였습니다. 상황 발생 10여 시간 만에 신병을 확보했습니다.

◇ ‘이건희 장례식장’ 방문자 확진…헬스장 등 일상공간 감염 확산


사진=연합뉴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례식장을 방문한 취재 기자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지난달 26일 이 회장의 빈소가 차려졌던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을 다녀간 취재 기자 1명이 이달 2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4일 밝혔는데요. 이 확진자는 장례식장 방문 이튿날인 27일 증상이 처음 나타났습니다. 방대본은 이에 따라 증상 발현 이틀 전인 25일부터 전파 가능성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26일 함께 식사한 동료 3명을 밀접 접촉자로 분류했습니다. 현재까지 이들 중에는 추가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 한국계 앤디 김, 미 하원의원 재선…중동전문가로 ‘오바마 키즈’


앤디 김 미 하원의원 (사진=연합뉴스)
한국계 앤디 김(38·민주)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AP통신은 4일 오전 0시30분(현지시간) 현재 75% 개표 완료된 뉴저지주 제3선거구에서 김 의원이 55.0%의 득표율로 공화당의 데이비드 릭터(43.9%) 후보를 따돌리고 승리를 확정했다고 전했는데요. 지난 2018년 11·6 중간선거에서 승리해 하원의원이 된 그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릭터 후보에게 3∼7%포인트 앞서 일찌감치 재선이 유력시됐습니다. 중동 전문가인 김 의원은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몸담았던 ‘오바마 키즈’ 가운데 한명으로 꼽힙니다. 당시 부통령을 지낸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와 오바마 전 대통령이 2년 전 그의 선거운동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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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toystor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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